생활강사과정을 마치고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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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생활강사과정 이야기를 쬐금 올립니다. 과정을 함께 하면서 시종 챙겨주신 권도반님, 그리고 교육 기간 내내 든든함을 주신 장사범님, 교육마지막날 수료식에 참석하여 온 마음으로 축하해주신 원장님 정사범님 신수사님 우수사님 김소연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손수 수련장 차를 운전하여 편안하게 분당까지 데려다주신 원장님의 따뜻함은 지금도 가슴에 가득합니다.


< 미소로 반기는 영동교육원 >

‘처음처럼’
‘한 솥 밥’
‘여럿이 함께 하면 힘든 일도 즐거워라’

1.
4월 3일 토요일, 분당 구름 약간 끼고 썰렁, 영동 상쾌.
새벽에 양지수련장의 권지태 도반님과 함께 영동행 기차를 수원역에서 타고 2시간 남짓 후에 영동역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타 교육원에 10시 조금 전에 도착하였다. 우리 수련장의 장사범님이 출발부터 동행하여 마음 든든하였다. 도착하자마자 교재와 이름표를 받아 도복으로 갈아입고 강당으로 가서 2박 3일의 물샐틈없는 교육일정에 들어갔다. 아하 오랜 멈칫거림과 뜸들이기를 거쳐 비로소 지원한 생활강사 과정이 시작되는구나 - 시작이 반이렸다 하는 마음이 긴장된 몸을 어느 정도 풀어준다. 교육원 강당 출입문에 붙어 있는 ‘처음처럼’이라는 낯익은 글씨체가 새로운 다짐 위에 시원한 바람처럼 스쳐지나간다.

2.
낮에는 교육장으로 밤에는 남자 도반들의 침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세월의 풍상마저 다 바치고 있는 듯한 강당이 우리 모두를 수줍은 듯 포근히 품어준다.

태극기와 도기 그리고 도훈이 전면에서 엄숙함을 자아내고 있는 것은 양지수련장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엄함과 자애로움을 유장한 경지의 심오함 가운데 펼치고 있는 선사님들 -비경님, 청운님, 무운님 -의 생사를 초월한 듯한 눈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경향 각지에서 모인 아흔아홉의 선도인들을 생활강사로 잉태할 자궁, 영동교육원은 천방지축인 어린이들을 꿈많은 소년 소녀로 거듭나게 하던 보금자리였단다. 오랜 세월 영양분, 물, 햇볕 등으로 아이들을 무럭무럭 자라게 했던 하늘과 땅의 기운이 어우러져 휘돌고 있는 그 곳에서 국선인들이 땅을 딛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금년 말(?)로 그 소명을 다할 것이란다.

3.
본관 입구에는 반백년을 뛰어넘는 세월을 지켜온 소나무들이 해묵은 명찰을 달고 있다.

‘교목 : 1950년 제7회 졸업생이 담임선생님을 위해서 시항산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 2그루 - 힘찬 기상과 씩씩한 기백을 길러 겨레의 큰 기둥이 되라는 의미’

이 소나무들은 국선도와의 좋은 인연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으로 펼쳐져있으면서 우리들 하나하나에게 입꼬리 올리는 그윽한 미소를 건네주고 있다.

운동장 건너에는 별관이 있는데 이 곳에는 과정생 모두가 긴장과 스트레스를 던져버리고 서로서로 따뜻한 눈길을 나누며 본능과 원시를 노래하던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끼니때마다 예외없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일식 사찬과 감칠 맛나는 국물. 아침에는 위장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져준 생식과 싱싱한 야채. 사랑과 솜씨를 듬뿍 담아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방의 도반님들(정말 정말 복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이 모두가 함포고복하며 교육의 긴장과 심신의 피로를 미소지으며 이겨나갈 수 있는 근기를 제공했다면 과장일런지 - 대부분의 과정생들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할 것만 같다. 이 식당의 유리창 출입문에 붙어있는 ‘한솥밥’이라는 글귀는 우리 모두가 한 식구임을 잊지 말라고 미소짓는다.

본관의 뒤편에는 해우소와 가건물 형태의 세면장이 자리잡고 있다. 성별로 나뉘어 있는 소형 구조물들은 각각이 자주적인(?) 모양을 갖고 있다. 애초에 부조화 속의 조화를 염두에 둔 듯한 차림새다. 해우소에는 칸칸마다 읽을거리를 매달아 잠시도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할 양이다. 남자 해우소의 일자로 된 옛스런 소변소 눈높이에는 ‘여럿이 함께 하면 힘든 일도 즐거워라’가 붙어 있고 이 글을 교육 중에 어떤 도반이 ‘여럿이 함께 가면 빨간 신호등도 즐거워라’로 패러디해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살면서 가끔씩 신호위반해보는 것도 맛깔스런 일이지요.

4.
본관과 식당 별관 사이에는 초등학교시절에는 크게 보이던 바로 그러한 자그마한 운동장이 자리잡고 있고 그 가장자리에는 미끄럼틀, 철봉, 뺑뺑이 등이 역할을 다한 초병들이 쉬고 있는 듯 편안하게 놓여있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오르고 내리고 돌고 뒹구는 소리들, 순서를 다투며 소리치는 모습들, 잘못 다쳐서 울며 아파하는 몸짓들, 서로서로 좋아하고 함께 사이좋게 나아가자며 순수한 마음을 나누는 기운들, 이 모두가 아직도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거기에 국선도 대학생들과 도반님들의 상생의 기운이 함께 춤추고 있는 듯하다. 그 옆에 울타리 너머 교육원장님의 사택이 천지기운의 어우러짐 속에 자리잡고 있다.

‘영동교육원’. 가까이는 조그만 개울이 휘감아 흐르고 저기 저만치엔 수원지 역할을 하는 저수지가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그 곳. 포도, 배, 복숭아밭 등이 반대편 산 밑으로 수줍은 듯 펼쳐져 있는 그 곳. 해맑은 시골의 인심과 부드러운 땅의 지심이 하나 되어 조상대대로 하늘을 받들고 살아왔음직한 그 곳. 그 곳이 국선도의 텃밭이지요. 그 도전(道田)에 뿌려진 도반들. 3일동안 무럭무럭 자라 스승님들이 바라는 열매로 거듭 태어나야 할 텐데. 이 생각을 하며 교육삼매에 빠져 부족함을 채우고자 했던 지상 선계와 같은 그 곳이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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