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사람
김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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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

나는 밀레의 명작 "씨뿌리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 어린 시절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에 비친 인상 깊은 모습이 평생 잊혀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산골 비탈 밭에서 부부가 씨를 뿌리고, 쟁기가 널려 있고, 어미 소 옆에는 송아지가 한가히 놀고 있는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수련을 하면서 단전에 생각과 마음을 모을 때, 가끔 이 풍경이 떠올라 평화로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수련도 농사짓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부들은 봄에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으면서 정성껏 농사를 짓고, 가을에 열매를 거둔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 콩을 심은 데 팥이 날 수 없고 팥을 심었는데 팥이 날 수 없다.

국선도에 입문하여 수련하면서 농부의 마음으로, 수련한 만큼 거둔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수련을 시작한지 11개월이 지난 지금,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움트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수련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련시간에 잘 나올 수가 있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으로 시작하였으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의 생명이요 건강임을 깨달아가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딱딱한 껍질을 깨고 새싹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듯이 나의 아집과 편견으로부터 해방되는데 인내가 필요하였다. 특히 생각과 마음을 한 곳에 모으기란 정말로 어럽고 힘들었다. 세상사의 온갖 잡념과 욕심 때문에 의념을 한 곳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기단법 후편을 수련하던 중, 갑자기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평소에 허리통증은 일년에 한 두 차례 나타나는 증상으로, 심하면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바로 서지도 못하여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요양하면 없어지곤 하던 지병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증상은 전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길었다. 통증이 심해서 도장에도 나오지 못하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며 집에서 누워 있었다. 그런데 침을 맞아도 별로 차도가 없었다. 심한 통증이 가라앉고 걸을 수 있게 되자 원장님과 상담하였다. 그리고 다시 중기단법 전편부터 조심스럽게 수련을 시작하였다. 일주일쯤 지나자 허리의 통증이 조금씩 나아갔다. 이제는 허리의 통증도 없어지고 몸도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수련을 마치고 나면 혈색도 좋아지고, 몸도 가볍고 기분도 상쾌하여, 수련시간이 기다려진다. 20여 년 동안 괴롭혔던 허리의 통증이 서서히 나를 떠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욕심과 급한 성격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수련을 잘하고 싶고 빨리 건강을 되찾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과도하게 호흡을 하고 무리하게 행공을 하였던 것 같다.
수련할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는 것을 잊어버린 채, 건강한 미래만을 바라보면서 수련하여 왔던 것이다. 수련시간에 내 몸에 감사하고 무리하게 힘주지 말고 자신의 몸에 맞게 수련할 것을 항상 당부하는 소중한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을이 되어야만 열매를 맺는 것을 나는 봄부터 열매를 맺고 싶어하였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 수련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마음과 호흡이 흩어져 수련이 산만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농부의 마음으로 돌아가 단전에 뿌린 작은 씨앗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호흡을 잘 하겠다는 욕심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열매가 맺어질 때 까지 기다리라고 다짐한다.
실천하기 정말로 힘든 수행이지만 오늘도 나는 수련 시간이 기다려진다. 수련시간 동안은 모든 것을 잊고 우주와 내가 하나되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행복의 길로 초대하는 고마우신 원장님과 함께하는 도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03.11.26. 김 병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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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2003-11-27 22:15:03
나에게 다가왔던 허리통증을 통해 감사함을 배우고 자신을 되돌아볼수있는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씨앗의 싹을틔우고 자라게하듯 감사함을 키워나가는 기쁨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