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삶 (케네디 증후군을 수련으로 극복하며) - 고 대 수 200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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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기?
막상 수련기란 이름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쓸거리가 없는 것 같다. 제 주위에 있는 많은 분들은 내가 국선도에 대해 대단히 할 말이 많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막상 쓸려고 하니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련기란 말만 보면 보통 약장사나 사이비미신 치료 등의 효험을 보이는 빛 바랜 단골 메뉴 같아 막연하게나마 수련기는 내가 읽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는데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수련기란 이름으로 몇 자 적게 되다니...세상을 믿지 못한 죄이거니 하고 수련과정에 대해 몇 자 적어 중기단법 전편을 마감하고자 한다. 나 또한 약장사 꾼 처럼 내가 수련한 과정을 얘기할라치면 움직이는 종합병원 같은 내 병 치유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여서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사실 국선도 수련과정에 병 치유 과정은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며 수련과정에 얻어지는 보너스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겉으로 들어 난 것의 변화를 좀더 빠르고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그걸 원할지도 모르고 내 자신도 초기에는 그 치유과정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중기단편 후편부터는 육신보다는 마음치유 과정에 좀더 비중을 두어야겠다. 어찌하든 수련기는 내가 중기단법 전편을 마감하면서 내 맘과 몸의 변화과정을 정리하는 것이니 이런 저런 잡다한 상념을 접고 그간 내가 경험했던 것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또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수련기란 이름으로 글을 남겨보나 싶어 몇 자 적어보기로 한다.

내가 국선도에 처음 입도한 것은 올 2월 중순께였을 것이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무릎도 쑤시고 팔도 불편하여 한방처방을 이 곳 저 곳에서 받아도 별 효험이 없자 전에 단학선원에서 수련한 경험도 있고 해서 단전호흡이나 한 번해보자 하고 찾은 곳이 집 근처에 있는 양지수련원이다. 물론 처음부터 국선도 양지수련원을 찾은 것은 아니었고 다른 지역 단학선원을 다니려고 하였지만 차를 타고 가야하기에 포기하고 없었던 일로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국선도란 간판 밑에 단전호흡이란 작은 글씨가 보여 양지수련원을 찾게 되었다. 내가 찾은 것은 그냥 단전호흡이라니까 다 같은 단전호흡이거니 하고 찾은 것 이였다. 그런데 첫날 수련을 참관해보고는 잘 못 찾아왔다는 후회가 일었다. 내가 경험했던 호흡수련은 그것만으로도 일일 운동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역동적이면서 힘찬 동작과 구령이었는데 국선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회비도 다 낸 상태이고 다시 가서 회비를 돌려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낸 돈 어치 만 다니자하고 다니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건 데 그 때 회비를 돌려달라고 했으면 원장님은 흔쾌히 그러시라고 돈을 돌려주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어찌되었을까?
인생을 바꿀만한 불치병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국선도가 아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예사롭지 않은 인생 대 파란이 이루어졌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틀림없는 것은 내가 양지수련원에서 원장님 그리고 여러 도반님들과 함께 수련을 해야만 되는 운명이 지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수련기를 쓰고 앉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각설하고-
처음 국선도 양지수련원에 입도 하여 몇 일간은 누가 특별히 지도해주는 것도 아니고 수련장에 들어가면 숨소리까지 죽이고 절제된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동작을 따라 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러면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면서 뭔가 감이 잡히는 듯하기도 하고 몸도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아 할만하다 하고 느낄 무렵 제주도에 있는 농장에 일에 있어 내려가게 되었다. 그때는 잠시만 다녀와야지 하고 갔다가 일에 휩싸여 두어 달 정도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 때 도복까지 챙겨가서 공기 좋은데서 마음대로 수련을 해봐야지 하고 맘먹었지만 한 두어 번하고는 일에 취하다보니 수련은 마음속에서만 맴돌고 행동으로 옮겨보지 못했다. 이때 몸 상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입술과 혀의 일부가 자꾸 마비가 오고 팔도 올라가지 않아 양치질이나 세수, 머리감는 게 힘들어지고 머리 빗질은 거의 불가한 상태까지 갔으며, 다리는 계단 다섯을 오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까지도 내가 농장을 떠나면 모든 일이 그대로 정지되어 농장이 엉망일 것 만 같아 병원도 못 가고 계속 일에만 매달렸다. 불편함이 심해지면 질수록 더욱 농장 일에 집착하였고 급기야 주위에 인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이를 보다못한 어머님이 남들이 너보고 ㅂㅅ이 다되었다고 그렇게 수군거리는데 병원에도 안가보고 뭐 하는 것이냐며 나무랐고 나는 ㅂㅅ이란 말에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악을 쓰며 어머님에게 대들고 인부들을 향에 욕을 해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개에게 물린 사람 같았다고나 할까..
결국 짐을 꾸리고 분당으로 올라왔고 병원을 찾았다. 종합병원 신경정신과에서 1차 진단을 하던 의사선생님이 상당히 심각한 표정으로 심상치 않은 증후가 보인다며 급하게 근전도 검사 및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1시간 이상이나 바늘을 가지고 온몸을 찌르며 근전도 검사를 마친 의사는 담당수련의들을 모아놓고 내 병을 가지고 내 앞에 토론을 가지는데 상당히 대단한 것을 건진 것처럼 들떠서 눈을 반짝이며 ALS같다며 수련이들 에게 자랑처럼 병명을 말했다. 의사가 정색을 하고 내게 직업과 나이 등을 몇 가지 묻고는 참 안되었지만 향후 5년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하고 말했다. 순간 나는 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앞으로 5년간 살 수 있다면 3년간은 살던 대로 살고 나머지 2년은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두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도 삶에 대한 미련은 있었는지 나는 의사에게 정말 아름다운 나이에 죽게 되네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가 내가 크게 놀라지 않는 데에 대해 약간 당황하면서 그래도 모르니 내일 한번 더 정밀 진단을 해보자해서 다음날 유전자분야를 담당하는 다른 의사에게 정밀 재진단 받은 게 지금의 병 '케네디 증후군SBMA'으로 판정을 받았다. 5년 사형언도에서 무기형으로 판정을 받아 목숨은 건졌다.

*케네디 증후군은 케네디란 사람을 통해 밝혀진 병으로 초기 증상은 근육마비병인 루게릭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루게릭병은 기도근육까지 마비되어 호흡곤란으로 발병 후 5년 이내에 사망하지만 케네디 증후군은 수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사지가 마비되고 안면 일부근육이 마비되어 휠체어 의존하여 살게 되는 여러 해 동안 계속되는 진행성 불치병이다. 병역을 정밀하게 따져보자 5년 전에 벌써 병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심하지 않아 주변 한의원에서 애꿎은 한약만 여러 첩 지어먹었다. 케네디 증후군은 인구 5만 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변형된 유전인자에 의해 발병하여 현대의학으로서는 예방약도 치료약도 전혀 없는 상태로 근육이 마비되어 가는 진행과정만 지켜봐야 하는 중병이다. 의사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근무력증 보다는 10배는 더 무서운 병이라고 했다.

국선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하늘은 내게 케네디 증후군이라는 불치병 진단을 주면서 또한 국선도에 인도하여 불치병이 당신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찬찬히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였다. 하늘은 내게 한번의 삶으로는 모자랐는지 불치병이란 화두를 던져주며 두 번의 삶을 살게 해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한번 태어나 두 번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거기다 불치병이라고는 해도 지금 당장 사지가 마비되어 불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주어 서서히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 고맙다. 매일 병원에 누워 가족도 힘겹게 하고 본인 스스로도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소 불편할 뿐이니 병중에서도 귀족병인 것이다. 또한 불치병이라 함은 현대의학이 한계점에서 내린 자포자기 최종진단 일뿐이지 국선도 단전호흡을 통해 바라보는 내가 내린 진단은 불치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선생님들은 내게 불치병이란 진단을 내렸지만 정작 그 병을 얻어 가진 본인인 나는 그 불치병을 인정할 수 없다. 자기들이 고칠 수 없다고 무조건 불치병이라는 것은 잘 못이다. 타인이 인정하고 당사자도 인정한 최종진단이 불치병이면 그것이 정말 불치병이 되지만 내가 그걸 인정하지 않기에 절반의 불치병인 것이다.
이런 진단을 받은 내가 아파트 경비실 앞 몇 안 되는 계단도 한번에 못 올라 다니는 내가 국선도에 입도 하여 한 달만에 지리산 백궁선원 뒤에 있은 주산을 오른 얘기와 3개월만에 오대산 노인봉을 오른 사실에 대해 어떻게 오를 수 있었는지는?

중기단편 전편 수련과정과 몸과 맘의 구체적 변화는 중기 단편 후편을 하면서 서서히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감하고자 한다.


정각도원 체지체능 선도일화 구활창생

2002. 8. 28

중기단법 전편을 마감하며
분당에서 고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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