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산내새 200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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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에 입문하여 일년이 지난 지금 중기 후편에 대한 수련기를 적으려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오로지 숨만 돌단자리에서 고무줄 처럼 탄력 있게 들락 거린다.
컴퓨터에선 율려음은 계속 울려 나오고…

내가 생각해도 그 동안 수련은 열심히 한 것 같다.
시골 가는 날, 그리고 과음한 날 몇 일을 빼고는 하루도 거르지않고 도장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지난번에 <백일수련>을 시작한다고 원장님이 도반님 들에게 선포를 했을 때 난 집사람에게 웃으며 건방진 말을 했다 “나에게는 백일수련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고. 왜냐면 나는 <죽는 날까지 수련>을 이미 선포 해 놨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열심히 수련 했지만 수련의 질을 생각해보면 부끄러워 진다.
수련이란 말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포함 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면 아쉬운 점이 많은 것 같다. 좀더 체계적이고 선험적인 지식을 알고 수련에 임했으면 더 좋은 수련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외공적인 수련이나 운동은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사도 가능 하고 내 잘못을 바로 시정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국선도처럼 내공을 위주로 하는 수련은 수련 방법이나 변화 등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인내심과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군에 갓 입대한 이등병에게는 고참병이나 소대장보다 바로 위 일등병이 더 무섭고 군 생활에 대해 배울게 많다.

이런 의미에서 이 수련기가 나를 위한 반성문이기 전에 나보다 늦게 입문하는 도반님 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꾸밈없이 사실대로 수련기를 적는다.

¨중기후편을 수련하며

중기 전편수련을 마친 후 희망의 2002년 새해를 맞았다.
누구나 그러듯이 새해를 맞아서 각오와 다짐이 많았다.
국선도 수련에 대한 새해 각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는 열심히 수련해서 뭔가를 해내야지…
그 뭔가에는 해묵은 허리병의 완치가 주 내용이었다. 욕심도 지나치다. 30년 묵은 허리 고질을 일년 수련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다니.

지난 6개월의 중기전편 수련 효과는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도 하루에 도장에서 수련 하는 것 외에 호흡수련을 한두 시간씩 더했는데도 숨은 가슴과 배를 오르내렸고 장작개비 같은 몸은 부드러워 지려고 하질 않았다.
어떤 때는 아주 기분 좋게 숨이 하단전에 내려가서 단단하게 토담을 쌓는 것 같았는데 자고 나면 그만이다.

뭔가 내가 잘못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고 회의도 들었었다.

어쨌든 각오는 단단히 하고 3월까지 중기 후편 수련을 미루고 중기 전편을 계속 했다.

중기전편 행공중에서 난이도가 높은 몇 개의 행공이 허리를 세우는데 좋은 것 같아서 였다.

3월말까지 하루도 안빠지고 (이건 출석부를 보면 안다.) 수련을 했는데 춘 사월 봄이 되어 노오랑 개나리가 피면서 중기후편을 시작할 무렵이 되니 비로소 숨이 아래로 내려가 자릴 잡으려고 한다.

중기후편의 행공은 전편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행공이 많다. 어떤 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흉내도 낼 수가 없다.
중기전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어 왔는데 …

행공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호흡도 어렵다.
행공보다 호흡이, 호흡보다 의념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다.
행공이 안되니 호흡이 안되고 호흡이 안되니 의념 또한 모아질 수가 없다.

가부좌의 자세를 보아도 그렇다.
완전한 가부좌의 다리 자세에 활처럼 앞으로 휘어 얹어진 허리와 목을 세우고 아무런 불편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호흡은 저절로 깊어지고 한없는 사유의 세계로 들어 갈수 있을 텐데.

가부좌는커녕 반가부좌를 겨우 하고 나면 다리가 뒤틀리고 무릎이 아프고 거기다가 허리는 꺼꾸로 휘어져 앞으로 숙여지니 숨이 내려 갈려다 막혀서 도로 올라 온다.

서서 행공하면 허리병 때문에 다리가 결리고 앉으면 숨이 내려가지 않고 누우면 잡념이 괴롭히고 아무리 의념을 모으고 열심히 호흡을 해도 몸이 굳어서 풀리지 않으니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하는 회한 속에 봄 처녀는 인사도 없이 개나리꽃을 거두어 가버리고 오월의 여왕이 미소지며 지나간다. 그리고 손짓한다.
그런 고생 하지말고 오월의 프르름을 즐기라고…

그래도 행공은 계속되었고 호흡은 멈출 수 없었다.

청산 선사님은 수련을 고행이라 말씀 하셨던가…
아무리 고행이라도 고행하는 재미가 있어야지.

유월이 왔다. 유월만 되면 생각 나는 게 모란꽃이다.
어릴 때 고향 집 장독대 옆에 유월만 되면 정숙하면서도 화사한 귀부인처럼 곱게 피는 모란꽃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유월에 국선도에 입문한지 일년이 된 것이다. 왜 국선도 수련이야기를 하다가 모란꽃을 들먹이는지 모르겠다. 모란의 자태가 국선도의 숨결과 닮은 데가 있는건지…

일년 정도면 뭔가 맛을 알 때가 된 것 같은데 이상하다.

숨은 하단전에서 놀고 행공은 제법 모양새를 잡아 가는 것 같은데 뭔가가 답답하고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숨쉬는 재미를 못 느낀다.
문득 과거 수영을 배우던 때 생각이 난다. 테니스나 골프 같은 운동은 게임이기 때문에 배우고 나서 금방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그 재미를 버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육상이나 수영 등 기록이나 체력을 위한 운동은 그 자체의 맛을 느끼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

내가 수영 배울 때는 그냥 수영복 입고 물놀이 하는 재미로 다니다가 정말로 수영 그 자체의 매력을 맛보기 시작한 것은 2년이 지나서 이다.

그렇다면 고행이라고 하는 국선도 수련은 얼마나 지나야 맛을 알 수 있을까?


¨숨쉬는 맛을 알다

그런데 그 맛을 알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맛을 알게 해준 것은 “부드러움”이었다.

평소 나는 아주 부드럽게 숨을 쉰다고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느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깨달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부드러움이었다.
날마다 수련하며 듣는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말을 정행 하지 못한 것이다.

의념을 집중하고 선도주에 억 매어 규칙적으로 숨을 쉴려고 애쓰다 보니 내가 쉬는 숨보다 더 부드러운 숨이 있다는 걸 몰랐다.

날아가는 새를 보듯이 무심한 마음으로 숨을 바라보라는 말, 그리고 나를 저만큼 밀쳐놓고 바라만 보라는 말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선도주의 음률을 대금가락으로 연주한 율려음의 “정각도원 체지체능”까지의 시간을 시계를 놓고 재어보니 정확히 10초이고 “불도일화구활창생” 까지가 10초이다.

숨이 깊어지면 둘 숨과 날숨을 합쳐 20초 호흡을 한다고 하여 그 동안 무리 없이 20초 호흡을 하여 왔다.

이제 생각하니 그건 오만이었다.
그래서 좀더 부드러운 호흡과 무리함이 없기 위해 10초 호흡을 하고 숨을 항상 100% 들이쉬고 내쉬지 않고 30%정도 여유를 가지고 쉬면서 가장 편하고 여린 숨을 쉬었다.

비로소 하단전에 숨은 안식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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