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련체험기 1편 -국선도를 만나다-
김글로리아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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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 바쁘게 지내느라 TV볼 시간도 없던 내가 우연히 인간극장 <별난 한의사>’를 재방으로 보게 된다.

한 젊은 한의사 부부가 마음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자 도시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어느 깊은 산골로 이주해 자연 속에 한의원을 짓는다는 줄거리였다.

건강을 잃고 나서 직장생활도 못한 채 몇 년을 늪에 빠져 살다가 간신히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 나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 부부를 보니 왠지 내 몸 상태를 잘 알고 치료해 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왔다. 그래서 정신없이 인터넷에서 그 한의원을 검색했고, 겨우 겨우 찾아서 그곳과 연결이 되어 바로 그 주말에 경상도 해발고도 600미터의 오지 한의원을 찾아 가게 된다.>

 

범상치 않게 생긴 한의사 선생님은 도시에서의 10분 진료와는 달리 1시간동안이나 진료를 봐 주셨다. 아주 인자한 모습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 건강 상태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면서 두 달에 한 번씩 찾아올 것을 당부했다.

나는 찾아오는 길이 너무나 멀고 번거롭지만, 두 달 뒤에 오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는데, 두 번째 방문하기로 한 시기에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시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형제들의 상황 때문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는데, 내 몸도 성치 않은 마당에 아픈 사람까지 돌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갔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한의원이 자꾸만 생각났다.

더 이상 지칠 수가 없을 만큼 힘들어지자 다시 한번 한의원에 가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 몸 상태를 여기 저기 살펴보시더니 이제는 건강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입니다라고 하시며 세 가지 호흡 중 하나를 해 보라고 권유하셨는데, 국선도가 그 중 하나였다.

 

나머지 둘은 평판이 안 좋거나 배울 수 있는 곳이 너무 멀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극선도 수련원도 지하철로 여덟 역이나 떨어져 있었다.

전화로 문의했지만 선뜻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퇴근하면 파김치가 되는 저질체력에다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해서 마음의 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전화문의만 하고 마음속으로 저울질만 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직장에서 조퇴까지 하고 느닷없이 수련원을 찾은 그 날은 내가 죽을 것만 같아서였다.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마음의 상처와 육체적 피로감이 너무나 컸다.

한시도 늦출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절실한 마음을 갖고 드디어 집에서 한 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가장 가까운 수련원을 한 달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처음 뵙는 사범님의 인상은 매우 듬직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아픈 부위를 상세히 말씀드렸고, 그 날 오후 타임에 처음으로 국선도를 하게 되었다.

준비운동을 정신없이 따라하니 행공을 하지 말고 누워 있으라고 하셨다.

평소에 긴장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낯선 환경에 몸과 마음이 많이 경직되어 있었는데, 행공 중 사범님이 누워 있는 나에게 다가오시니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속으로 무척이나 긴장했지만 사범님은 단전에 가만히 손가락을 대시기만 했다.

 

그 순간 저 아래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처럼 어둡고 우울하고 무거웠던 몸과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화가 밀려왔다. 그 느낌을 차마 표현할 수가 없는데, 먹구름만 가득했던 내 마음에 햇살 하나가 비추어지는 것처럼 아주 따스하고 평화롭고 고요한 그런 느낌이었고 지금도 그 느낌이 매우 생생하다.

후에 국선도를 하면서 육체적으로 피로해서 수련을 게을리 하고 싶었을 때에도 그 느낌 덕분에 수련을 놓지 않게 되었다.

 

나는 첫 날 그 느낌 때문에 국선도가 대번 좋아졌다. 아니 사랑하게 되었다. 오죽 좋으면 아침, 저녁으로 거의 빠지지 않고 가고, 토요일까지 수련을 했겠는가?

수련원을 가는 걸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 마냥 설레였다.

반대로 출근 때문에 수련을 빨리 마쳐야 할 때는 너무나 아쉬웠다. 집과 직장이 가까워서 좀 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너무나 커서 수련원 근처에 집을 얻으려고 알아보기도 했다.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여름에 시작했기에 에어컨을 틀어놨는데, 좌사법을 할 때면 선골 부분에서 바람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에어컨 바람인 줄 알았는데, 에어컨을 끈 상태에서도 바람이 느껴지기에 신체의 변화임을 알게 되었다.

또 밤마다 단전 부위가 당기기도 했다. 마치 핀셋으로 단전부위 살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침이 많이 나왔다. 보통 말할 때 나오는 침과 달리 물처럼 맑은 침이 수련 중에 많이 나왔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모두 좋은 변화라 내심 뿌듯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관원에 의념을 두고 호흡을 했다. 사범님이 행공 처음 시작할 때 가만히 손을 대 주시면 그 좋은 기운의 여운을 잃지 않고 행공 끝까지 관원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집중이 너무 힘들었다. 자꾸만 딴 생각이 났고 행공 동작을 익히느라 눈을 떠야 했기에 더욱 더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숨이 들어올 때에는 우주의 좋은 기운이 지금 나에게 들어오기를, 숨을 내쉴때는 내 안의 모든 나쁜 기운이 다 빠져나가기를 바라며 한 숨, 한 숨 정성을 들여 수련하려고 노력하였다.

3개월 후 중기단법 후편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도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당시에는 수련기를 써야 하는 줄도 몰라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 아마 의념은 관원, 명문을 번갈아 보면서 했던 것 같다.

별다른 변화도 없고 단전호흡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는 가운데, 몸이 점점 힘들어졌다.

불면증으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잠을 설쳐온 데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첫 지하철올 타고 새벽 수련을 갔기 때문이다.

저녁타임에만 할 수도 있었지만 아침에 하는 수련에 비할 바가 아니라서 힘들어도 새벽 수련은 절대 빠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수련을 하려니 온 몸을 쥐어짜는 느낌이었다.

없는 기운으로 준비운동부터 행공, 정리까지 하다보면 어쩔 땐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새벽잠을 설치면서까지 하는 이 수련이 과연 어떤 이득이 있는지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매일 회의와 의구심에 스스로가 괴로울 지경이었다.

 

처음에 단전호흡이라 할 때는 무슨 대단한 호흡법이 따로 있는 줄 알고 일부러 숨을 참는다거나 배 근육을 움직이기도 했다. 잠자기 전에는 침대에 누워 숨을 일부러 크게 쉬고 크게 내쉬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범님은 단전호흡은 만드는 게 아니라 아기처럼 자연스럽게숨을 쉬는 거라며 숨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나가면 나가는 대로 그냥 자연스럽게 쉬라고 하셨다. 단 풍선의 바람을 다 빼듯이 완전히 숨을 내뱉으면 반동 작용으로 숨이 자연스럽게 차오른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에는 관원을 관()하고 에서는 명문을 관하면서 숨쉬기 연습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숨 쉬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게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단전호흡은 아니었다.

단전호흡이란 게 있는 건가?’

도대체 단전호흡이 뭔지 미치도록 알고 싶을 때,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수련을 시작한 지 정확히 6개월 후였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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