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게재된 주철환교수의 초보수련기입니다.
김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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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육체의 역습

주 철 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MBC에서 예능프로그램을 대표하는 PD 중의 하나로 《우정의 무대》《일요일 일요일 밤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등의 프로를 제작했다.

 

3월 들어 시간표가 바뀌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한 거다.

‘운동 좀 하라’는 얘기는 질리도록 들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운동 안 하는 것도 소신이냐?”

뭐 이런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숨쉬기운동과 걷기운동은 꾸준히 한다’며 버텨왔다.

 

불통의 나를 ‘운동’하도록 만든 전환의 계기는 무엇일까.

 

믿음이 가는 후배가 어떤 운동의 장점을

말하는데 처음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몇 번의 권면으로는 미흡하다.

“저랑 같이 다니시는 거 어때요?”

역시 친구의 조건은 동정, 동경이 아닌 ‘동행’이다.

마침 집 가까운 곳에 운동할 장소가 있다는 것도 결단에 힘을 보탰다.

 

 

이제 그 운동의 이름을 밝힌다. 국.선.도.

차마 내가 그런 걸 해보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도복을 입을 때까지도 ‘그냥 따라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이함이 있었다.

등장한 사범은 근육질과 거리가 먼 젊은 여성분이었다.

낭랑한 목소리와 단아한 자태.

그러나 그분이 동작을 시작했을 때 난 알아차렸다.

 “잘못 왔구나.” 따라 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잡념을 버리라고 하는데

도저히 그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꼭두새벽에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지’

하는 푸념이 줄기차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신병훈련소에서 고문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살아남았는데.

“지금 춤추냐?” 교관의 신기해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그때는 춤이라도 출 수 있었다.

 

 

나는 슬픔 속에서 깨달았다. “나는 ‘장애인’이다.”

그걸 늦게 알아차린 거다. 나는 나를 몰랐다.

차라리 모르고 살다가 그 상태로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다. 모험심을 가지자. 우선 나를 객관적으로 보자.

 

나는 내가 이렇게 많은 근육과 관절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매일 똑같은 근육과 관절만 써왔다.

주로 입과 무릎에 몰려 있는 것들이 내 몸의 전부인 양

편애하며 살아왔다.

아, 나는 신체의 ‘회전문 인사’를 했던 게 아닌가.

 

소외된 근육과 관절들은 서운해하며

보복의 기회만을 노려왔다.

차별대우를 받던 상당수는 이제 내 명령에 거역한다.

자신들을 뻣뻣하고 딱딱하게 방치한 나를 원망하며

총궐기에 나선 모양새다.

 

나는 소년기의 유연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신과 육신이 중심을 찾는 그 지점을 향해

나는 내일 새벽에도 ‘고난의 행군’을 이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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